제 목   2018 한독워크숍 및 제20차 통일한국포럼
글정보   행사일 : 2018-10-23, 조회수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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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독워크숍 및 제20차 통일한국포럼>


통일독일 군축·번영 경험
안정적·효과적인 한국만의 해법은?

  
평화문제연구소(이사장 신영석)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서울사무소 대표 베른하르트 젤리거)이 공동으로 주최한 2018 한독워크숍 및 제20차 통일한국포럼이 “군축과 번영, 통일독일 현장의 경험을 듣다”를 대주제로 지난 10월 23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개최됐다. 이날 손재식 통일한국포럼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통일 이후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를 극복하고 세계의 지도국가로 발돋움 한 독일의 경험을 통해 현재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사점을 도출해보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베른하르트 젤리거 대표는 환영사에서 “독일통일 과정에는 대내외적으로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지만 특히 동서독 리더들의 의지가 돋보였다”면서 “소통과 협력으로 긴장완화와 정세안정을 추구해가는 지금의 한반도에 당시 현장에 있던 인사들의 경험과 리더십이 중요한 제언을 들려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현인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축사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다가올 수 있는 통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각 분야의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실질적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시간”이라고 했다. 이어 한독의원친선협회 독일 측 회장을 역임한 하르트무트 코쉭 전 독일 연방의원도 “분단 상황이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면서 “한국이 독일의 경험과 과오를 지혜롭게 반추한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효과적인 한국만의 통일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축사했다.

사회 안정성 확보하려면? ‘사상적 변화’ 가장 중요해


   이날 회의는 군축과 번영이라는 두 가지 테마를 가지고 진행됐다. 우선 제1회의는 박창희 국방대 군사전략학과 교수의 사회 아래 “통일 과정에서 독일의 군축 경험이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시작됐다. 라이너 에펠만 전 동독 군축국방부 장관의 발표에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와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이 각각 토론을 맡았다. 이날 발표는 독일 현지 사정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에펠만 전 장관은 사전 제출된 발표문을 통해 에펠만 전 장관은 통일과정에서 주로 동독 인민군의 변화와 사회적 영향을 집중 조명했는데 “동독 인민군은 원래의 본분인 국방의 의무 이외에 경제 무대, 즉 산업 현장에 상시적으로 투입, 사회에 대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동독 인민군의 1만명 정도가 산업 현장에 투입되었고 필요 시 5만명 정도까지 동원되기도 했다”면서 “현재 북한에서도 노동인력이 부족한 산업 현장에 군인들을 투입하여 공사를 하거나 농사를 지원하고 있는데 병력의 사회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동독 인민군에 전투력 유지 실패 및 집권 세력에 대한 충성심 약화 등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에펠만 전 장관은 “군에 대한 위신이나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크게 추락했고 이는 군 복무에 대한 동기부여를 현저히 떨어뜨려 당시 의무병 제도를 실시한 동독 인민군의 정신적 무장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고 “동독 인민군을 움직이는 주체는 사회주의통일당이었지만 군 내부에 상실감이 만연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정권이 군부에 영향력을 투사해 활용하는 방식은 생각만큼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결국 사회주의통일당의 통제력 약화와 함께 인민군은 급격하게 와해되었고 1990년 3월 18일 동독의 최초이자 마지막 민주선거에 따른 새로운 내각 구성 이후 인민군 소속 군인에 대해 수년의 심사를 거쳐 소수만을 통일독일 군대로 흡수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인민군의 해체 작업을 주도하며 가장 어려웠고 조심스럽게 접근한 점은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즉 무기를 쥐고 생계를 이어나간 사람들을 농업이나 기타 산업의 생활전선으로 전환하고 사회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기회를 부여하는 작업이었다”면서 “다행히도 단 한 건의 폭력이나 불미스러운 사건 없이 평화롭게 임무를 종결지을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군축의 발걸음을 내딛는 지금의 한반도에 참고할 만한 점을 갖고 있다” 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근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의 진행 상황을 복기하며 “남북 당사자 중심으로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고 동북아시아 안정을 견인해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반도 문제는 남북 당사자 간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최선으로, 남북 간 확고한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최우선”이라면서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남북 간 군사합의는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남북문제의 독자성 확대로 ‘한반도 중심형’ 미래전략을 가능하게 하며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입지 확보를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독일은 통일 후 군사통합을 하고 군축을 추진해 나가면서 병력을 37만명에서 17만9천명으로 대폭 감축했는데, 이는 대외적인 안보 여건을 고려한 것”이라면서 “지금 한반도는 비핵화와 평화의 두 바퀴를 함께 굴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북 군사합의, 동북아 안보환경 선순환에 기여한다”

   이어 토론에 나선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은 “과거 서독 브란트의 동방정책처럼 먼저 상황을 만들고 구조 변화를 기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이후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다자안보협력에 소극적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고 유럽의 신뢰구축과 군비통제를 가져왔다”면서 “남북이 우선적으로 군사 분야 합의와 이행을 통해 한반도 안보환경을 변화시켜 나감에 따라 동북아 안보환경의 구조적 변화가 다시 한반도 안보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순환 환경 조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또한 이를 위해 “CSCE가 신뢰 속에 군축이 이루어진 것처럼 북핵에 대한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짐으로써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사회로 나서 제2회의에서 알렉산더 볼프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베를린사무소 대표가 “독일통일 이후 수도 베를린의 변화와 한반도에 주는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했으며 임형백 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부 교수와 박희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볼프 대표는 “동·서베를린은 각각 고유한 성격의 도전 과제를 안게 되었는데 가장 특징적인 분야는 바로 일자리의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서베를린 일자리의 경우 1991년과 2001년을 비교했을 때 거의 10만개 가까이 줄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동베를린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게 되었다”면서 “통일과 함께 맞이한 사회경제적 도전에 서베를린은 일정 수준의 가용한 정책적 변화가 요구되는 상황이었지만 동베를린은 완전히 구조적인 전환을 요구받는 상황을 맞았었다”고 회고하였다.

   볼프 대표는 “1990~1995년 베를린은 19%라는 엄청난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통일독일의 수도이기 때문에 대단한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 심리 때문”이라면서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지 않고 경제적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된 이유에 대해 “동베를린 지역에 있는 기업들이 도산하는 경우가 많았고 서베를린 지역에 있던 기업들도 현상유지를 못한 채 도시에서 이탈하는 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는 통일 직후부터 약 15년간의 시기보다 나은 상황인데, 이는 독일 전체의 경제가 상승하는 국면에 편승한 동시에 서비스 부문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경제적인 변화 이외에 정치·사회적인 의미로 수도의 기능을 다하게 된 이후 변화상을 설명하며 볼프 대표는 “과거 서독 시절에는 수도가 본이었지만 통일 이후 베를린이 수도로 지정되며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면서 “본에 소재했던 연방의회나 부처, 대사관과 관저 등 외국의 공관이 거의 베를린으로 옮겨왔고 따라서 도시 전체적으로 국제화 성향이 제고되어 현재 베를린 총 인구의 약 11%가 정치 분야 종사자”라고 소개했다. 또한 그는 “IT 분야와 의약 및 보건 분야에도 상당수의 종사자가 있고 특히 관광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산되고 있다”면서 “베를린은 유럽에서 런던과 파리에 이어 세 번째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인데 이는 베를린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 즉 분단되었던 도시와 그 상징이었던 장벽을 볼 수 있는 것 때문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볼프 대표의 발표에 대한 토론에서 임형백 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부 교수는 발표내용 중 베를린의 경제적 변화상에 주목하며 “통일한국이 아무리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북한의 기업의 상당수는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예단했다. 그는 “북한 인구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체제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경쟁력이 약하다”면서 “따라서 대량 실직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통일 이후의 도시 계획은 SOC뿐만 아니라, 고용, 주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도시 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 이후 도시 계획, 종합적 ‘도시 복지’ 차원 접근해야”

   이어 박희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북한의 도시는 자생적 시장화에 기초하여 지역별 시장화로 고착화되고 있다”면서 “모든 도시의 시장이 기존의 지방경제 단위들을 대체하고 있는데 내부 생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대외무역 출구가 중요한 지리적 이점으로 작용해 변경도시 중심으로 도시가 확대되는 특징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섬으로 갇혀있는 남한의 도시와 대륙을 연결하는 북한의 도시는 향후 급진적 발전이 예상된다”면서 “통일 이후 베를린의 변화는 통일수도이자 역사적 상징도시로서 국제사회가 주목한 도시인 반면 북한의 도시들은 베를린의 변화와 전혀 다른 경로를 보일 가능성에 대한 지금부터 주도면밀한 검토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회의가 모두 종료된 후 신영석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폐회사를 통해 “지금 우리 정부는 남북 간에 원만한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상당한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군사적 긴장완화와 도시 변화에 대한 측면에서 진행된 통일 과정 및 이후의 독일 경험을 지혜롭게 받아들여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고 동시에 선진 경제로 도약을 이룩하기 위한 묘수 찾기에 전 국민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