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한학교의 수행평가, 체험학습, 북한판 특목고, 학부모와 교사 관계, 왕따, 교복패션과 연애풍속도, 미래에 대한 꿈 등 학교생활과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며 남한 청소년・대학생들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탈북교사 강좌 61 | 연수 기간에도 상납은 이어진다
등록일2018-01-01
이름김인호
조회수309084
정명호 / 전 북한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교재 강습에 출연하는 강사들에게
인사의 명목으로 돈을 바치는 관례가 있다.
교재 강습이 주최 측의 돈벌이 수단이자 기회로 전락한 이유는
관행적이고 암묵적인 부패 문화와 관련이 있다.
소위 ‘예의', '도덕', '인사’의 의미로 인식되는 이러한
부정부패는 북한 사회를 더 곪게 만든다."
또 다시 새해가 왔다. 새해에는 독자들 모두 건강하기를, 또 북녘의 동포들도 올해에는 제발 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북한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생각난다. 지금쯤 방학이겠는데 여전히 비좁은 경비실에 모여 신년사 발췌, 문답식 경연 준비, 학생 소집일로 분주한지, 아니면 찬바람 부는 마당에서 인분 전투로 들볶는지, 혹은 교재 강습을 다행으로 여기며 한숨을 돌리는지 등 정착 7년이 지나 이제는 잊어버릴 만도 한데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북한 교원들은 방학기간에도 정상 출근해야 한다. 그래도 북한 교원들에게 방학은 바쁜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간이다. 특히 겨울방학은 더 낫다. 겨울방학에는 난방 문제로 대부분 학교에서 경비실이 곧 분과실이 된다. 경비실은 학교 경비를 위해 밤낮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기에 모든 교원이 모여 종합교원실이 된다. 경비실에 묶여있다는 자체는 곧 통제 속에 있다는 말이나 같다. 그러나 경비실 면적이 제한되다 보니 전체 교원들이 다 있기에는 무리다. 자연히 학생 개별지도, 가정방문, 학생 소집일 등 구실을 대고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북한식 교사연수 ‘교재 강습’
더 좋은 기회는 교재 강습이다. 바쁜 교원들에게 교재 강습만큼 확실히 빠져나갈 수 있는 구실은 없다. 물론 교재 강습에 참가해도 정치 학습에서 제외되는 건 아니지만 며칠만이라도 학교 조직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다. 조직의 통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과 성을 다 바쳐 일하고도 쌀 공급이 전혀 없고, 장마당에서 쌀 1kg도 살 수 없는 월급을 겨우 받고 묵묵히 앉아 통제를 받는 것은 외출을 갈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교재 강습이란 한국에서는 교사연수 과정으로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교재 내용이 변경되거나 상급기관에서 새로운 교수 조치가 내려와 시간의 변경이 있는 과목의 경우, 또는 교재 내용상 교원들이 수업하기 힘든 문제가 있는 경우, 새 교수 방법 토의 등으로 교재 강습을 시행한다. 주최 측은 시, 도 및 군 교수강습소다.
► 지난 2017년 4월 1일 북한 평양 소재 한 중학교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개학식을 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20년 가까이 경제난으로 시름하는 북한 사회 특성상 교재 강습의 본질도 퇴색되어 그저 형식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교원들은 교재 강습 자체를 자질 향상의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학교, 당 및 행정조직의 통제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기회로 여길 뿐이다.
또한 교재 강습은 주최 측 일꾼들에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북한에는 교재 강습에 출연하는 강사들에게 인사의 명목으로 돈을 바치는 관례가 있다. 교재 강습이 주최 측의 돈벌이 수단이자 기회로 전락한 이유는 북한의 관행적이고 암묵적인 부패 문화와 관련이 있다. 소위 ‘예의, 도덕, 인사’의 의미로 인식되는 이러한 부정부패는 북한 사회를 더 곪게 만든다.
1970~1980년대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이었지만 1990년대 식량공급을 비롯한 사회주의 시책들이 무너지며 ‘고난의 행군’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규범과 원리원칙이 무너지며 도덕과 예의라는 윤리적 표명 아래 노골적으로 이러한 악습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2008년도 교재 강습 당시 참가하는 교원은 1인당 참가비로 5천 원씩을 냈다. 그 5천 원에서 일부를 강사와 강습소 일꾼에게 나눠준다. 또한 일부는 강습 종료 회식비로 쓴다. 5천 원이면 중학교 1급(제일 높은 급수) 교원 월급보다 많고 대학교수의 최고 월급 수준이다.
인사하는 예의?
씁쓸한 것은 교원들 대다수가 5천 원의 의미에 이견이 없고, ‘교수 강습소 일꾼이나 강사나 다 자기가 맡은 일을 하는데 우리가 왜 돈을 내야 하나? 이것은 당의 방침에 어긋나지 않는가? 이것은 부정부패가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교원이 없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의문을 제기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취급 당하는데, 기막힌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교수강습소 일꾼들은 교원들이 교재 강습에 빠질세라 확인하는 데 여념이 없고 혹시라도 결원이 생기면 해당 학교에 통보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원칙대로 하는 체하며 뒤에서는 일부 교원들에게서 개별적으로 뒷돈을 받고 참가자 명단에 올려주는 행위를 버젓이 행한다.
이런 부정부패는 지방이나 평양이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평양은 더 크게 한다. 평양에서 진행하는 교재 강습에 참가한 도급의 한 교원은 강습 후 1인당 1만 원씩 냈다고 한다. 오늘날 북한 사회가 힘을 잃어가는 것은 이 같이 순종적이고 관행적인 부패 문화가 사회 전반을 휩쓸며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교재 강습이 있어 서로가 ‘윈-윈’ 하지 않나 애써 이해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