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한학교의 수행평가, 체험학습, 북한판 특목고, 학부모와 교사 관계, 왕따, 교복패션과 연애풍속도, 미래에 대한 꿈 등 학교생활과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며 남한 청소년・대학생들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탈북교사 강좌 60 | 겨울맞이? 자급자족이야!
등록일2017-12-01
이름김인호
조회수306826
정명호 / 전 북한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평양시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중앙난방이나 지역난방을 하는 곳이 없다.
주민 절대다수가 소위 ‘아궁이 문화권’에 살고 있다.
평양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아파트에서 아궁이에 장작이나 석탄을 때고 산다. 학교의 난방 시설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월동준비는 그야말로 전투다."
지난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그렇게 추워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올겨울은 더한 한파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 벌써부터 긴장이 된다. 남한이 이렇게 추우니 북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엄동설한을 견디고 있을 텐데, 추위가 계속될수록 북한에 있는 친척들과 내가 몸담고 있던 학교가 떠올라 걱정이 앞선다.
북한 학교의 겨울 풍경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북한의 난방 시설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북한은 평양시 중심부를 제외하고는 중앙난방이나 지역난방을 하는 곳이 없다. 북한 주민 절대다수가 소위 ‘아궁이 문화권’에 살고 있다. 남한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어렵겠지만, 평양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아파트에서 아궁이에 장작이나 석탄을 때고 산다. 그러니 학교의 난방 시설은 더 말할 여지가 없다. 지역 자체가 북쪽인데다 난방시설이 미비하니 월동준비는 그야말로 전투다.
연통을 사수하라
아직도 북한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에 했던 월동준비가 눈앞에 생생하다. 내가 살던 북쪽 지역에서는 매해 10월 말이면 월동준비가 시작된다. 월동준비의 가장 첫 번째 순서가 바로 학급별 난로 설치다. 난로 설치에 있어 가장 큰 애로사항은 연통이다. 북한 당국에서 난로나 연통을 따로 공급하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힘으로 해결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난로와 연통은 해마다 없어지거나 모자란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학교 창고에 방치되어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도대체 누가, 언제 도둑질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난로와 연통이 도난당하는 사태는 경제난으로 인해 중국에 고철을 수출하면서부터 발생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국경지역에서 고철을 중국에 팔아 식량을 들여오는 대전투를 벌였는데, 당시 세관 앞에는 날마다 고철을 가득 실은 중국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러다 노동당의 방침으로 고철을 수출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밀수꾼들이 활동을 재개하면서 고철 도난 사건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학교라고 도적들의 시야에서 벗어날 리 없었기 때문에 해마다 난로와 연통이 모자라는 것이다.
► 2015년 12월, 학생들이 김일성의 교시가 적힌 포석 앞을 빗자루로 쓸고 있다.
부족한 난로나 연통을 확보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학부모들에게 부탁해도 뾰족한 수가 없다 보니 담임들은 아이들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연통을 얻어오라는 과제(실제로는 도둑질)를 준다. 아이들은 가정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나 기관 근처에서 연통 비슷한 것만 봐도 훔친다. 아이들을 바르게 키워야 할 학교가 오히려 나쁜 짓을 강요하고 가르치는 꼴이다.
난로를 설치하면 거기에 들어갈 장작이나 석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 장작이나 석탄 값은 하늘을 찌를 듯 높다. 한국에 와서 북한이 해마다 수백만 톤의 석탄을 중국에 수출한다는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주민 세대는 물론이고 공장, 기업소, 학교에도 공급 못하는 석탄을 중국에 내다 판다니 기가 막히고 한숨이 절로 난다.
학교에서는 가을철이면 학부모회의를 열고 난방에 필요한 석탄이나 장작을 살 돈을 모은다. 1인당 부담해야 하는 돈도 적지 않은 액수다. 이렇게 해마다 강제로 돈을 모아 겨울철 교실 난방을 하는 것이 북한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볼펜 얼어 입김 불고, 책상 밑 시린 발 동동
냉기로 꽉 찬 오전 시간의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들은 추위와 사투를 벌인다. 볼펜이 얼어 필기할 수 없어 입에 넣고 입김으로 녹이는 아이,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설명을 듣는 아이, 시린 발을 책상 밑에서 동동거리는 아이, 얼어붙어 판서도 제대로 되지 않는 칠판. 이것이 북한의 겨울철 교실 풍경이다.
특히 겨울방학이 끝나고 첫 수업이 있는 날에는 교실 벽이 온통 성에로 가득하고 벽에서는 물이 줄줄 흐른다. 겨우내 얼었던 교실이 난로 열기에 녹기 때문이다. 이런 날에는 오전 내내 교실이 냉동실이나 마찬가지다.
난로 설치를 마치면 창문과 출입문에 방풍작업을 해야 한다. 다양한 재료가 없어 신문지에 풀을 발라 유리 모서리에 바르면 끝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다닥다닥 붙은 창마다 방풍을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종이를 바르느라 여념이 없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남한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보온팩? 보온 방석? 언감생심이다. 강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겨울철을 보내는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는 사람도 없다. 난방시설이 완비되어 있는 남한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춥다고 하는데, 북한 아이들이 느끼는 추위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다. 하루빨리 통일한국 시대가 도래해 남북한 아이들이 함께 쾌적한 교육현장에서 자라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