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과 대학생들의 일상생활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한학교의 수행평가, 체험학습, 북한판 특목고, 학부모와 교사 관계, 왕따, 교복패션과 연애풍속도, 미래에 대한 꿈 등 학교생활과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며 남한 청소년・대학생들의 궁금증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탈북교사 강좌 57 | 신세져도 절대 굴복 말라?
등록일2017-09-01
이름김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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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호 / 전 북한 양강도 혜산시 소재 중학교 교사
일일드라마 ‘빛나라 은수’를 보면 신입교사를 고의적으로 고발해 교직에서 파면시키는 한 여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학생이 교사의 교권을 침해하고, 신입교사들이 수업이나 학생지도에 애를 먹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북한 교사들도 교단에 선 첫날부터 아무런 실수 없이 멋지게 수업하는 건 아니다. 신입교사 시절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수없이 많다.
필자가 막 교사로 임용되었을 때만 해도 교단에 갓 선 교사를 놀리려고 칠판이나 선생님의 옷에 손거울을 비춰 의도적으로 수업을 방해한다든가, 분필통에 개구리를 잡아넣어 교사를 놀라게 하는 등 사춘기 중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학생들도 이런 유치한 장난을 점점 하지 않거니와 최근에 임용된 교사들 역시 이런 장난에 당하지 않는다. 물론 첫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질문 공세를 당하는 일은 아직도 여전하다. 학생들은 신입교사가 들어오면 교사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까다로운 질문을 하기도 한다.
►지난 4월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북한 소학교의 수업 모습
영악할 대로 영악해졌다!
최근의 북한 교육 현장의 신입교사들에겐 어떤 에피소드가 있을까? 시기로 보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적인 식량난이 본격화되며 북한 사회의 모든 흐름이 바뀌면서부터 교육현장의 모습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로부터 주민들의 생활방식이나 의식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교사들도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대학을 다녀 별 문제 없었지만, 지금의 교사들은 대학 때부터 온갖 경제난에 시달리다 보니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져 순수함이나 겸손함 같은 건 찾기 힘들 정도다. “내가 어떻게 배운 지식인데 공짜로 가르쳐?”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정도다. 나도 우리 학교에 갓 배치된 신입교사들이 자기들끼리 뒤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물론 모든 교사들이 다 얼굴을 뻣뻣이 들고 교만하게 행동한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 지역의 어느 한 소학교(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학교는 지역 내에서도 교사들의 실력이 출중하다고 소문나 다른 지역에 사는 간부들이나 잘 사는 집 자식들이 암암리에 연줄로 입학하던 학교다. 해마다 시 단위 학과 경연에서 1등 자리를 놓치지 않고, 제1중학교, 외국어학원을 비롯한 특수학교 입학률이 가장 높은 학교다. 이렇다보니 학부형이 여느 소학교보다 소득수준이 높았고, 교사들이 학부모들로부터 경제적 도움도 많이 받아 저마다 은근히 배치받기를 원하는 학교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한 교사가 이 학교에 배치 받고 1년 만에 학급을 맡게 되었다. 교사는 첫 수업을 마친 후 학생들에게 개인정보를 요구했다. 북한에서는 갓 입학한 1학년 신입생들이 개교 첫날에 집 주소, 부모님 이름과 직장 직위, 당별(노동당원인지 아닌지), 식구 수 등을 적어내는 것이 하나의 관례다.
그런데 학생들의 가족사항을 받아본 이 교사의 얼굴이 그만 울상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당 기관, 행정기관 부원들이었던 것이다. 부원이란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팀내 하부 말단 직원과 비슷하다. 물론 요즘 북한 학교들에서 최고의 학부모는 직위가 높은 간부보다 돈을 잘 버는 학부모다. 직위가 높은 학부모는 담임의 경제생활에는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날 그 교사는 교장실에 달려가 자기 학급에 제일 맥없는 학부모들만 배정했다고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물론 거주지별로 묶어 학급을 구성하지만 이 기본 규칙마저 다 무너져 버린 북한 교육현장이기에 교장에게 잘 보이면 ‘먹을 알 있는(돈 있는)’ 학부모로 학급을 구성할 수 있다. 이렇게 신입교사들도 교사의 사명감보다 돈에 더 신경을 쓰고 있으니 북한 교육현장의 실태를 알만할 것이다.
“돈 달라면 돈 주고 ··· 내가 얼마나 잘했는데!”
어느 한 중학교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신고를 받았다. 학생이 공부를 잘 하지 않아 한 체벌이 도를 넘다 보니 학생의 엄마가 교장실에 찾아왔다. 학부모와 면담한 교장이 담임을 불렀다. 그 자리에서 학생의 엄마가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하고 자주 수업에 빠진 건 잘못했지만 어떻게 그렇게 때릴 수 있어요? 내가 선생님께 얼마나 잘했는데? 돈을 부탁하면 돈을 보내주고, 집에 대소사가 있다고 하면 상소 물(상에 놓을 과일, 당과류)도 해결해줬는데!” 하며 선생을 걸고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교사가 그런 적 없다며 학부모에게 한 마디라도 질세라 반박했다는 것이다. 학부모가 돌아간 후 그 교사는 생활이 어려워 돈 있는 학부모 신세를 졌다고 교장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가관인 것은 교장이 그 자리에서 교사에게 “잘했다, 똑똑하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먹을 땐 먹더라도 학부모 앞에서 절대 굴복하지 말라’는 의미다. 이 말이 교사들 속에 퍼지며 모두가 그 교사가 참 똑똑하다고 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교단에 오래 선 교사들뿐 아니라 신입교사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대학 시절 이미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온갖 풍파를 다 맛보아 사회생활에서 전혀 기죽지 않는다. 결국 국가의 경제난이 교사로서의 사명감에도 막중한 영향을 미쳐 교육현장의 풍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북한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이다.*